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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자 개인전 ‘우아한 도시’ 리뷰

김영태

전시일정: 2016. 9. 29 (목) - 10. 16 (일)
전시장소: 갤러리 룩스

글: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정경자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건이나 인물, 사물, 공간 등에 주목하며 지극히 사적인 감정과 미적인 주관이 혼재된 이미지를 생산했다. 이번에 발표하는 ‘우아한 도시’시리즈도 표제 그대로 도시의 일상에서 흔하게 발견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과 일상적인 장면을 포착해서 시각화 했다. 그런데 스트레이트straight 하게 재현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인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을 후반 작업에서 묶어서 또 다른 이미지를 생산했다.



Elegant Town_33



작가가 이번시리즈에서 수집해서 보여주는 결과물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과 사소한 사물들이다. 그중에는 도시의 인공조명을 흐릿하게 포착한 이미지도 있고, 도시공간에 떨어진 꽃잎, 하늘을 날아다니는 전투기의 에어쇼 장면, 도시의 건축물 등도 있는데 순간순간 만나는 특정한 장면이나 사물 중에서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나 특정한 장면을 재구성한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작가가 포착해서 재현한 이미지는 특별한 대상이나 장면을 재현한 결과물은 아니다. 도시에 만난 여러 대상 중에서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현혹하는 장면과 대상을 자신의 언어로 변주 했을 뿐이다. 또한 현실의 재현이다. 하지만 리얼리티와는 전혀 관계없는 선상에서 이미지 스스로가 타자의 감정을 유혹하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멀리는 19세기 중반이후 가깝게는 20세기 초반이후 사진가를 비롯한 시각예술가의 관심사가 신화적이거나 신의 창조물인 순수 자연에서 벗어나 인간사회, 도시, 문명사회의 산물 등으로 이동했다. 산업혁명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문화의 중심지가 순수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시골 혹은 전원田園에서 탈피하였는데 정서적으로 도시가 친숙해진 탓이다. 인류는 산업혁명이후 빠르게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의 산물에 더 익숙해지고 정서적으로 빠져들었다는 의미다. 정경자도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정서적으로도 좀 더 공감대가 형성되는 도시공간에서 마주한 사물과 장면을 재구성해서 시각화했다. 그런데 문자나 언어로 옮길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 이미지 스스로가 의미를 재생산하며 존재하는 표상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내면과 조우하지 않는 이들은 쉽게 공감 할 수 없는 최종생산물이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도시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외부적으로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내부적으로도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이처럼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변화를 거듭하면서 존재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도시 이곳저곳에서 자신의 지각을 자극하며 현혹하는 여러 장면과 대상을 카메라 앵글에 담은 이후에 디지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미적인 주관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조형언어로 재구성했다. 그런데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물과 장면이 인위적으로 묶어져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색하고 어울릴 수 없는 이미지들이 재구성되었지만 초현실주의적인 장면처럼 동일한 공간에서 공존하며 보는 이의 정서를 자극한다. 작가의 세련된 감각이 능동적으로 개입한 탓이다.



작가는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이 자신의 논문에서 이야기한 도시의 산보객처럼 도시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만난 다양한 사물과 특정한 장면을 수집했다. 전통적인 길거리 사진가들처럼 이미지 수집가와 유사한 태도로 카메라앵글에 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에는 자신의 미적인 주관과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디지털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아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결과물의 외관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 질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어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산하는 성과를 거뒀다.
작가는 이번전시에서도 이전에 일우스페이스에서 개최한 전시처럼 영상작업도 함께 전시했는데 사진은 2층 전시공간에서 공간과 어우러지게 배치되었고, 3층 전시공간에서는 영상과 특정한 문자를 이미지화하여 보여주었다. 그런데 작가가 전시하는 이미지와 문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제시하거나 설명하지는 않는다. 문자와 사진이미지 모두 서사구조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이미지 자체로 존재하며 감각의 영역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사진으로 특정한 사건을 재현하거나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지의 느낌 자체로 우리의 지각을 깨어나게 하는 역할을 할뿐이다. 또한 또 다른 층위에서 미적인 쾌락을 제공한다. 21세기적인 영상언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자연물과 인공물, 특정한 장면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이질적인 대상들이 묘하게 엮어져서 보는 이의 감각을 일깨우고 기호와 언어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한다. 작가는 분명히 현실에서 존재하는 공간인 도시의 이미지를 수집해서 결과물을 생산했다. 하지만 결과물 자체는 초월적이며 현실공간과 무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포착한 장면과 사물은 충분히 초현실적이다. 그런데 후반작업으로 인하여 그러한 분위기가 좀 더 극대화되었다.
또한 전작들에 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지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한발자국 더 다가갔다. 작가 자신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정서적인 변화가 발생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 결과 작가가 생산한 이미지가 보는 이의 심리를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지 재현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각예술은 초기에는 완벽한 존재인 신의 창조물을 모방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예술가의 주관적인 세계관 및 미적인 주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시대시각예술은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탐구나 형과 색의 유희도 아니다. 개별예술가의 주관적인 사유의 결과물 일뿐이다.
정경자가 생산한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이미지도 작가의 아주 사적인 관심사와 정서의 변화, 미적인 감각을 표상한다. 또한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작가만의 아름다움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아함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 일 수도 있고 그와는 간극이 있는 조형언어 일수도 있지만 결과물 자체가 작가의 정신세계를 암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경자의 정서가 작품마다 스며져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내면적인 단면을 만나게 하는 전시다. 또한 결과물 자체가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된 현현顯現의 다름 아니다.
끝으로 이 전시를 보는 이들은 어떠한 감각으로 도시를 느낄지 궁금하다. 다의적인 의미선상에 있기 때문에 보는 이의 반응 자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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